오늘은 대영박물관에 왔다. 호텔에서 걸어서 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외국인 가이드가 해주는 투어를 신청했는데, 투어 집결지가 후문이라는 걸 조금 늦게 확인해서 5분정도 늦었더니 도착했을 땐 가이드는 없었고 여행사에 전화해봐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상품명이 대영박물관 입장 & 하이라이트 투어 였는데 박물관 입장은 무료였고 가이드도 받지 못했으니 사기당한거나 다름없다.
그래도 후문으로 들어간 탓에 금방 들어갈 수 있긴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꼭 봐야하는 것들 위주로 보기로 했다.
후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먼저 나오는 것은 이집트 관으로, 미라의 관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이집트관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은 람세스 2세의 흉상으로, 오른쪽 가슴에 뚫린 구멍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흉상을 프랑스로 옮기려다가 실패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대영 박물관의 전시품 중 가장 유명할 법한 로제타 스톤. 같은 내용의 내용이 상형문자와 간소화된 상형문자인 민중문자, 그리스 문자의 3가지 종류로 적혀있어서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돌이다. 프랑스군이 발견했지만 1802년 나폴레옹이 패퇴하면서 이집트에 고립된 프랑스군을 무사히 귀환시켜주는 조건으로 영국군이 받아가서 지금까지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시리아관에는 아시리아의 수호 동물이었던이라는 거대한 라마수의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위압감을 준다.
그리스・로마관으로 이동해 본다. 통채로 훔쳐서 전시해 둔 네레이드 신전을 볼 수 있다. 다만 그리스관은 현재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원형을 볼 수 없었던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쪽은 밧세 프리즈라고 하는 길이 31m, 높이 0.63m의 23개 패널로 이루어진 대리석 조각들인데, 밧세의 아폴로 에피큐리우스 신전에 있던 대리석들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엘긴 마블이라고 하는,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조각상들. 대부분은 5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엘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7대 엘긴 백작인 토마스 브루스 경에 의해 오스만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엘긴 마블들은 대부분 머리가 없고, 끝 부분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오스만 제국이 전쟁 중에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 창고로 보관하다가 포격을 맞아서 신전이 날아갔고, 유물도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국 대사 겸 전권장관이었던 엘긴 백작은 술탄의 승인을 받아 이 대리석을 가져다가 개인 박물관을 꾸미려고 했지만, 이혼소송으로 인해 거액의 빚을 지게 되어 그 과정에서 영국 정부에 대리석을 팔아넘기게 되었으며 이후 영국 정부에 의해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뜬금없이 그리스 전시관에 있던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카이후키 쾌청. 아카후지로도 유명한 이 그림은 2014년 JR패스의 커버에서 처음 접했었는데, 이걸 여기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하다.
그리스 전시관에서 시간을 조금 많이 소비한 것 같아서, 빠르게 정문쪽으로 이동해서 작은 금붙이가 많이 있던 방으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The Holy Thorn Reliquary가 있는데, 예수님의 면류관에 있던 가시를 보관해 놓은 성유물함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프랑스의 루이 9세는 1239년에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진정한 가시관류관이라고 믿었던 것을 구입했는데, 각각의 가시는 후속 프랑스 왕들에 의해 선물로 분배되었다. 프랑스 왕 샤를 5세의 형제였던 베리 공작이 이 성물함을 만들어 가시 한 개를 보관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방에는 시계들이 잔뜩 있었는데, 이 시계는 Bridges Microcosm이라는 시계로 Henry Bridges 에 의해 제작된 정교한 천문시계라고 한다. 시간과 날짜뿐만 아니라 태양, 달, 별, 행성들의 움직임을 포함한 다양한 천문학적 정보를 표시한다.
다음으로 이어진 방은 The Enlightment(계몽주의 시대) 라는 이름이 붙은 방으로, 방 한가운데에 'The Piranesi Vase'가 놓여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조각가, 건축가, 그리고 화가로 유명한 Giovanni Battista Piranesi(1720-1778)가 제작한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Piranesi는 로마의 고고학적 유적을 기반으로 한 에칭 작품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부터는 중국관이다. 홍콩을 점거했던 영국이었던 만큼 엄청난 유물이 들어차 있다.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백자.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중국 유물이 있었지만 시간상 패스한다.
같은 방엔 인도관도 있는데, 역시 무굴 제국을 제압하고 인도 제국을 지배했던 영국답게 정말 많은 유물이 있다.
춤추는 나타라쟈 시바 신상. 인도 타밀주에서 가져온 것으로 춤의 제왕인 시바의 모습을 형상화한 신상이다.
박물관 한 켠에 한국관이 있길래 가 보았다. 입구에는 긴 병풍이 맞아준다.
한국관은 2000년에 새로 만들어진 곳인데, 대부분은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대여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도자기들을 볼 수 있다. 이런건 한국에서는 침몰한 배에서 청자를 잔뜩 건져올려 아울렛 매장처럼 전시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박물관에 있기에는 살짝 아쉬워보이는 백자.
사랑방이라고 꾸며둔 곳이다. 건축 양식을 통채로 가져다 둔 곳도 흔치 않긴 한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가장 위층으로 가면 일본관이 있다. 여기도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국관보다는 크다. 저 접시가 굉장히 화려했다.
역시 일본하면 생각나는 사무라이의 복장까지 갖추어 두었다. 영국에서 간단하게 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듯.
일본관을 둘러보고 계단으로 내려오니 미이라관이 있었다. 이집트관과는 따로 떨어져 있어서 놓칠 뻔 했다.
이쪽은 로마 유물들이 꽤 있다. 각종 금으로 된 양식들이 인상적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
The Lewis Chessmen 이라고 하는 체스 피스들. 12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제작되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정말 찾아보기 힘든 영국 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체스 피스들은 상아와 고래뼈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노르웨이인들이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즈 제도와 맨 섬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세 노르딕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로마시대의 각종 그릇들. 생활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로마의 유물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듯.
이것도 유명한 소장품 중 하나인 Mechanical Galleon. 독특한 형태의 자동 시계로 16세기 독일에서 제작되었으며 갤리온의 형태를 띄고 있다. 30cm정도 높이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선체에 각종 조각과 장식이 새겨져 있고, 선내에는 시계가 돌아가며 시분을 알려주는 다이얼이 탑재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구조물과 오르골이 같이 재생되는 복잡한 기계 장치로 되어 있어서 500년 전에 만들어진것치고 정말 정교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걸 다 보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적당히 보고 박물관의 정문으로 빠져나왔다. 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종일 본다고 해도 부족할 것 같지만, 핵심적인 것들만 빠르게 보고 와서 만족했다. 시간이 그다지 없다면 유명한 유물들을 검색한 뒤에 그것들만 빠르게 보고 나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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