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

연남동의 보물, 프렌치 레스토랑 쿤

루스티 2019. 7. 29. 01:41

정말 오랜만의 맛집 리뷰로, 연남동 프렌치 레스토랑 '쿤'을 다녀왔다.

재벌 3세가 취미로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같다는 평을 들었는데 과연, 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재벌 3세라면 이런데 가게를 열진 않을 것 같지만)

하루 전에 예약해서 테이블은 잘 되어 있었다.

가게 테이블은 네 개 정도로 크지 않다. 이런 기세라면 곧 사람들이 몰릴 것 같은데...

올해 개업하신 듯 하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오늘의 저녁 메뉴. 메뉴는 계절별로 바뀐다고 하신다. 이게 오른 가격이라는데, 코스 요리임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이 특징.

사실 예약하면 해산물 요리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름철에는 재료가 쉬이 상해 안 하시고 아마 가을이 되면 다시 하실 것 같다고.

착석하니 테이블 위의 촛불을 켜 주신다.

다만 에어컨 바람이 이 촛불로 쏟아지는 통에, 바람 앞의 등불같은 촛불이 되어버렸다.

바게트와 유자버터. 따듯한 빵과 어울리는 유자버터는 달고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맛이다

주인장께서 빵을 다 먹었는데 유자버터를 더 드릴까 물어보셔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하나 잘 체크해 주시는 섬세한 분이셨다.

요리는 먹는 속도에 맞추어 나오는 것 같고, 다음 요리를 준비해드릴지 항상 물어봐주신다.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청포도 드레싱 카프레제 샐러드. 드레싱엔 유자도 살짝 들어간 것 같고, 발사믹 식초도 곁들여져 나온다.

야채와 치즈도 신선했고 방울토마토도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카프레제 샐러드를 방울토마토와 모짜렐라 보콘치노의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세 번째 메뉴는 크림 야채 리조또. 비벼드시는 것 보다는 스푼으로 떠 드시는 편이 좋다는 안내와 함께 따뜻한 접시에 서브되었다.

위의 가니쉬는 바질인가 했는데 먹고 보니 깻잎향이 나서 깻잎인 줄 알았을 정도로 보기에도 예쁘다.

당근이 굉장히 부드러웠고 그에 비해 옥수수와 완두콩은 흐물흐물하지 않아서 돼지고기와 함께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생크림이 살짝 들어갔는지 굉장히 고소하고 맛있었던 리조또. 이 리조또 하나만 팔아도 맛집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드디어 메인이다. 먼저 내가 주문한 미디움 레어 소 채끝 스테이크부터.

사실 이 메뉴는 단품으로만 해도 이 곳의 코스 가격이 나올 것 같은데, 양도 적지 않아서 일단 놀라고 시작한다.

스테이크가 두 줄로 되어있는데, 한쪽은 레어, 한쪽은 살짝 더 익혀져 있어서 불조절이 살짝 잘 안 된 걸까 싶긴 했지만 양쪽 다 맛있었다.

겉은 크리스피하게 구워져 살짝 불의 향이 나고, 속의 육즙은 남아 있어 정석적인 스테이크임을 느낄 수 있었고, 가니쉬로 올려진 연근과 콜리플라워와 아스파라거스와의 조합도 훌륭했다.

게다가 고기 아래에 깔린 감자와 버터, 생크림을 갈아 만든 퓨레도 굉장히 맛있었다. 한국 감자로는 프렌치의 퓨레맛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고 하시던데 달고 부드럽고 고기와 잘 어울리는 걸 보니 잘 구현하신 듯.

여자친구가 주문한 레드와인 등갈비 조림.

요약하자면 프렌치식으로 구현된 갈비찜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조림인데도 스테이크처럼 불향이 느껴지고, 오래 쪄낸 갈비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텍스쳐가 살아 있어서 좋았던.

스테이크나 등갈비나 이 가격에 이만큼 나오는게 이상할 정도로 메인 양이 많이 나와서 배부르게 먹었던 것 같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로 수박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바닐라 시럽을 위에 얹은 수박 셔벗같은 아이스크림. 셔벗이라고 해야 할 지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셰프가 아이스크림이라고 했으니 아이스크림이겠지.

수박을 가지고 이렇게 만들기 쉽지 않은데 정말 달고 맛있으면서도 수박의 느낌을 잘 살려낸 디저트였다.

일단 이 가격에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 되는 느낌이라서 높게 쳐주고 싶다. 가격의 두 세 배 정도를 받더라도 올 사람은 올 수준인듯.

실제로 10만원 이상 하는 모 프렌치 파인다이닝보다 양도 많고, 개인적인 만족도도 높았기 때문에 가을에 씨푸드를 맛보러 방문할 것 같다.

접시를 하나하나 따뜻하게 데워 내 주는 것이나, 다음 요리로 진행할지 하나하나 물어봐주는 것이나 이 가격대에서 기대하기 힘든 세심함과 배려가 좋았다.

비싼 파인다이닝보다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재료도 비싼 재료는 아니겠지마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보물같은 레스토랑의 가장 큰 단점은 위치이다.

용산선과 경의선으로 둘러싸인 연남동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변에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고 대중교통 접근성도 떨어지는 통에 여기까지 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성산로의 연희104고지 구 성산회관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오던가, 홍대입구/가좌역에서 걸어오던가, 홍대입구에서 마포05/06번 버스를 타고 올 수 있는데 셋다 쉽지는 않다.

주차는 주변에 주차장은 없고 적당히 근처 노상주차를 하면 되는데 쉬운 편은 아닌듯.

하지만 가을에 꼭, 또 갈 것 같다.



P.S. 주인장의 인스타가 이 가게의 정보를 전하는 유일한 공식 통로인 듯 하다. 주소는 https://www.instagram.com/chef_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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