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토 여행 - 5. 류곤의 설국 가스트로노미 가이세키 석식과 조식

노천탕을 한참 즐겼더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류곤의 풀 코스는 '설국 가스트로노미'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일본어로는 雪国とせ라고 되어 있는데, 「とせ」는 옛말로 '해(年)·연중'을 의미하니 설국의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라운지에서 식전주를 조금 마신 탓에 살짝 알코올이 올라 있는 상태로 식사를 시작해 본다.

식당에 있는 통창으로 눈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보여서 밥을 먹는 내내 즐길 수 있었다. 밖에는 비가 와서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느낌이었다.

사케 페어링도 같이 주문했는데, 가장 먼저 받은 것은 핫카이산 준마이다이긴조 유키무로 3년 숙성품의 것이었다. 두칸짜리 창고에 한쪽에는 눈을 가득 넣어두고, 한쪽에는 사케 저장고가 있어서 엄청난 양의 눈으로 연중 저온다습한 환경을 만들어 숙성한다고 한다. 누룩의 향이 살짝 강한 느낌은 있었지만 조금 뒤에 느껴지는 과실향과 단맛이 좋았다.

사키즈케로 식사가 시작된다. 위쪽 줄 왼쪽부터 토란과 뿌리채소를 옅은 간으로 조려 낸 니가타 향토 요리 놋페니(のっぺ煮), 무를 채 썰어 짭조름하게 절인 하리하리즈케(ハリハリ漬け), 연어 머리 연골을 식초에 절인 히즈나마스(氷頭生酢). 아래쪽 줄에는 킷카쥬레(菊花ジュレ, 국화 젤리), 무카고도후(むかご豆腐, 산마의 덩굴 사이에 맺히는 작은 살눈을 갈아 두부처럼 굳힌 것), 이리마메 시라아에(煎り豆白和え, 볶은 콩을 곁들인 두부 무침)가 자리 잡고 있다.

놋페니는 토란의 점성으로 굳은 식감이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젤라틴을 굳힌 젤리 같은 느낌이었고, 히즈나마스는 첫눈에는 야채인 줄 알았는데 연어 연골이어서 먹었을 때 생각과 너무 달라서 놀랐다. 킷카쥬레는 귤 같은 식감과 단맛 끝에 국화향이 살짝 쓰게 올라오는 요리였고, 무카고도후의 콩은 콩밥에 넣는 콩의 식감에 가까워서 조금 난해했다. 마지막의 볶은 콩을 곁들인 두부 무침은 고소하긴 한데, 살짝 목이 막히는 쪽이었다.

댓잎 위에 별도로 나온 것은 오오구치 렌콘모치 덴가쿠 타테야키(大口蓮根餅田楽 たて焼き). 이시카와현 오오구치(大口) 지역의 명물 연근을 떡으로 빚고 미소를 발라 구워 꼬치에 꽂아 낸 한 입거리인데, 다 먹고 메뉴판을 본 후에야 이것이 연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키즈케에서는 가장 맛있었던 요리.

메뉴판. 사키즈케에서 시작해 시오지루(潮汁), 사도산 부리, 토란·버섯 두유 그라탕, 니혼카이 생선(히라메)의 야키즈케(焼き漬け), 스다치 코메코 온멘(米粉温麺), A5 니가타 와규 저온 로스트, 우오누마 코시히카리와 켄친지루, 사도 안포카키(あんぽ柿) 파운드 케이크까지 아홉 코스가 이어진다.

니혼카이 천연 타치우오(太刀魚, 갈치)의 시오지루. 해산물 다시로 우러난 맑은 국인데, 정석에 가까운 깔끔한 다시 위로 갈치 살의 감칠맛이 단연 일품이었다.

두 번째 술은 에치고슈잔 마키하타(越後秀山 巻機) 준마이다이긴조. 핫카이산보다 한 단계 달고 향이 화사한 쪽으로 넘어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더 좋았다.

사도산 방어에 일본 삼나무 향을 입혀 카르파초처럼 펼쳐 낸 한 접시. 삼나무에서 옮겨 온 훈연한 듯한 향이 의외로 잘 붙어, 9코스 중에서도 단연 호감이었다.

토란과 버섯의 두유 그라탕. 두유 향이 확 올라오면서 콩을 농축시켜 놓은 듯한 콩 본연의 고소함이 강하게 받쳐 주는데, 그라탕이라는 것이 료칸 코스에서 보기 드문 요리라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요리였다.

니혼카이에서 잡은 광어의 야키즈케. 광어를 튀기듯 구워 간장베이스에 살짝 절인 요리 위에 버섯과 호지소(穂紫蘇, 시소의 꽃)를 올려 낸 한 접시인데, 호지소의 향이 구이의 기름 느낌을 깔끔하게 잡아 준다.

세 번째 술은 카쿠레이(鶴齢) 토쿠베츠준마이 히야오로시. 봄에 저장해 가을에 출하하는 술인데, 아마쿠치 계열치고는 도수가 세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나온 코메코 온멘(米粉温麺, 쌀가루면)은 가츠오부시와 다시마로 다시를 낸 국물에 말아져 나왔다. 코시히카리의 고장 니가타인 만큼 쌀가루로 만든 면을 사용한 것 같은데 맛있어서 조금 놀랐다. 스다치가 올려져 있어 향이 다소 세긴 한데, 국물의 감칠맛이 발군이라 한 그릇이 금세 비워졌다.

메인은 A5 니가타 와규 저온 로스트. 양파와 연근 구이가 사이드로 나오는데, 양파는 식감이 거의 감자에 가까울 만큼 부드럽게 익어 있었고, 연근은 자기주장이 정말 강해서 사키즈케의 연근 꼬치구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곁들임 이상의 존재감을 내 주었다.

우오누마(魚沼) 코시히카리(コシヒカリ) 솥밥. 일본 쌀 등급 최상위인 우오누마산 코시히카리를 도나베에 바로 해주는데,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데다 밥맛이 너무 좋아서 이때부터 열심히 우오누마 코시히카리를 찾아 먹고 있다.

디저트는 사도(佐渡)산 곶감 파운드 케이크에 호지차. 곶감이 들어간 케이크는 처음이었는데, 단맛 결이 자연스럽게 섞여 의외로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연못의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조식. 저녁을 먹었던 곳과 같은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설국의 아침(雪国の朝ごはん)이라는 이름의 정통 료칸 스타일의 조식 상차림이다.

먼저 두유에 제철 식재료를 갈아 두부처럼 굳혀 낸 계절의 두부 스무디로 시작해서, 일본식 김 조림인 이와노리 츠쿠다니, 누룩에 절인 연어, 산나물 킨피라(짭조름하게 채썰어 볶은 것), 말린 무의 깨 무침, 츠케모노, 오히타시(잎채소를 데쳐 무친 것)의 6종 반찬과 함께 메인으로 니혼카이의 도미와 토치오(栃尾)의 두꺼운 유부(油揚げ, 아부라아게) 조림과 두부 튀김인 히류즈와 건두부인 코야도후의 조림, 그리고 나베까지 꽤나 다채로운 한 상이다.

나베는 우오누마 키노코 나베로, 우오누마산 버섯을 진한 다시로 끓여 낸 1인용 나베인데 살짝 굳어 있는 추운 아침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라운지의 1인용 소파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한참을 더 머물렀다. 그러다가 방으로 가서 또 노천탕에서 몸을 풀면서 료칸에서의 마지막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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